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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어 번역사이다.

작성자
Lexcode
작성일
2019-05-15 11:26
조회
1443

나는 13년 차 번역사이다. 13년 동안이나 번역이라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번역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 설렌다.

내가 일본어를 처음 접한 건 중학교 때 일이었다. 당시 주재원으로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던 이모네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내 귓속으로 들려오던 일본어의 억양, 그리고 한자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적절하게 섞인 글들이 어린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다른 무언가에 가슴이 떨렸고, 궁금해졌다.

고등학교 입학 후 제2 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하면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른 과목은 한두 개 틀리는 정도로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지만, 일본어 시험만큼은 하나만 틀려도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대학도 일문과로 입학했지만, 한국 대학에서 배우는 일본어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일본어를 일본 사람처럼 떠들어 보고 싶었다. 일본어에 완벽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일본어 번역사가 되었다.

일본어, 일본 생활, 현지인들과의 관계에 푹 빠져서 약 6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일본에서의 긴 생활은 내가 잠꼬대를 일본어로 할 정도의 수준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 다양한 분야의 문서를 다루고 있고, 그 뜻을 마치 모국어처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만화부터 소설,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신문, 뉴스 등등 내 귓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일본어는 일본어로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나는 일한 번역보다는 한일 번역이 더 쉽고, 읽는 이로 하여금 평가를 받는다.

내가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신경을 쓰는 부분은 ‘번역문 같지 않은 번역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번역문을 만드는 나의 번역 과정은 이렇다. 먼저 국문을 훑어본다. 그리고 1차 번역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만들어낸다. 그다음은 사실상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다듬는 과정’이다. 국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해서 최대한 번역문 같지 않은 번역문으로 다듬는다. 내가 일본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읽어봤을 때 쭉 읽힐 때까지 다듬는다. 국문의 단어를 단어로, 혹은 문장을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일문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이 국문이 어떤 이로 하여금 쓰였으며,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를 이해한다. 예를 들어, 특허 명세서를 한일 번역한다고 하면, 기술적인 이해를 바탕으로(수많은 검색과 이해가 필요하다) 엉켜있는 한국어를 직역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일문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장의 경우는 반드시 의뢰인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반면, 인사문을 번역할 때에는 꽤 많은 의역이 들어간다. 일본은 본인이 나이가 많고 위치가 높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발언할 때는 적절한 겸양어를 써준다. 존경어/겸양어가 과도하게 발달한 일본어의 특징을 살려서 번역한 후, 일어나서 마치 내가 인사를 하는 양 읽어본다. 원문 그 자체가 어떤 사람에 의해서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지 확인하는 작업은 번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번역문 같지 않은 번역문’이 완성된다.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일본어, 다양한 수준의 일본어가 녹슬지 않도록 항상 주의한다. 매일 뉴스나 드라마를 듣고, 인터넷 기사나 소설을 읽는다. 번역회사에 프리랜서라는 형태로 소속되어 있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렉스코드를 통해 참으로 다양한 분야의 번역 건을 의뢰받았다. 어느 한 분야에 정착하게 되면 그 분야에서는 프로가 될 수 있겠지만 점점 그 수준의 일본어, 그 상황의 일본어밖에 쓸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아무리 모국어처럼 외국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노력하지 않으면 녹이 슬기 마련이다.

나는 어릴 적 꿈꿔왔던 모습으로 살고 있다. 아무리 일이 바쁘고 힘들어도 지치지 않는 이유이다. 너무나 간절히 꿈꿔왔던 번역사라는 직업에 항상 설레고, 누군가에게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번역사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번역사이고 싶다.


렉스코드 번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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