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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이 돋아요

작성자
Lexcode
작성일
2019-05-08 18:09
조회
165

한 달이라는 자유시간이 선물로 주어졌다. ‘Refresh’라고 부르는 안식월 제도는 다른 회사에서 보기 힘든 렉스코드만의 자랑할만한 복지이다. 3년, 6년, 10년에 각각 한 달, 두 달, 세 달의 휴가가 주어지는 안식월 제도는 일정한 근속연수를 채운 직원들이 쓸 수 있는 혜택이다. 3월에 쉬겠다는 휴가 신청서를 내고 회사 측의 승인을 받았다. 리프레시 기간 동안 무엇을 할 계획인지 많은 질문을 받았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사무실에서 보낸 시간 동안 수많은 높낮이를 겪었다. 성취와 반성이 있고 상처도 받았으며 만남과 이별이 굴레처럼 이어졌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재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여행을 가거나 공연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기분 전환을 하면 다음 날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리프레시를 쓸 연차가 되면 내가 유럽이라도 한 바퀴 돌고 올 줄 알았다. ‘동남아에서 한 달 살기’ 체험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휴가 승인이 나니 거짓말처럼 모든 호기심과 의욕이 사라졌다. 내가 왜 이렇게 무기력한 사람이 되었을까 고민스러웠다. 텅 빈 일정으로 3월을 맞이했고 휴대폰의 모든 알람을 껐다.


한 달 내내 늦잠을 잤다. 눈을 떠도 침대에 누워있었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예능이나 유튜브 영상을 보며 수돗물처럼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무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배고프면 그때 일어났다. 학창 시절의 방학에도 이렇게 게으르지 않았다. 지루한 나머지 책 한 권을 정해서 하루에 분량을 정해두고 읽었다. 내키면 운동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졸리면 바로 낮잠을 잤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 없이 느릿느릿하게 하루를 보냈다.


Refresh를 함께 해준 카페와 공원


집에 있기 싫을 땐, 편한 옷차림으로 동네에 있는 카페에 갔다. 평일 낮의 한가로움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며칠 만에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좁은 생활 반경에서 지내는 24시간이 다행히도 갑갑하지 않고 아늑했다. 자극적인 재미는 없었지만, 피로를 잊고 지냈다. 신경 쓰지 못한 옷가지를 깨끗이 빨아 볕에 내놓고 다림질하는 기분이었다.


하루는 일찍 일어나 공원 산책을 나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몰랐던 장소가 있었다. 걷다가 작은 전망대가 있어서 올라가 보았다. 산이 보이고 발밑에는 공원의 전경과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날이 흐려서 풍경에 대한 감흥은 없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아 쓸쓸하고 허전함이 느껴졌다. 소득 없는 발걸음이었지만 어차피 할 일 없는 아침이라서 억울하지도 않았다. 뭘 해도 여유로웠다.


아무리 숨을 고르면서 지낸 한 달이어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리프레시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기쁜 소식을 맞이했다. 가족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첫 조카가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났다. 아기가 나온다는 말에 부모님과 먼저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갓 태어난 생명을 마주했다. 눈물이 나게 예뻤다. 팔뚝만큼의 크기도 되지 않은 작은 아기가 유리창 너머 지켜보는 모든 어른을 감동시켰다. 조카의 첫 생일을 같이 맞이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회사에 복귀한 후 날이 금방 따뜻해졌다. 벚꽃이 보고 싶어서 점심을 먹고 예술의 전당 근처로 산책을 갔다. 아쉽게도 대부분 꽃이 진 뒤였다. 활짝 피었던 나의 30일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나무는 싹을 틔우고 내년에도 꽃이 필 것이다. 나도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야 한다. 사회인의 계절은 더 역동적이고 예측하기 어렵다. 밀려드는 업무를 해결해야 하고 하루 이틀의 주말이 소중해지는 일주일이 반복된다. 그래도 실컷 웅크리고 있었더니 기지개를 켜고 싶어졌다. 1/4분기를 보내고 2/4분기의 중간 지점에 와있다. 봄 같았던 휴식기는 끝났지만, 올해 남아있는 나의 가지에 파란 싹이 돋았으면 좋겠다.




편집팀 김주진 대리
02-521-2743/jjkim@lexco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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