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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대표님, 커피가 달달하네요~”

작성자
Lexcode
작성일
2018-12-03 10:22
조회
385
나는 원두커피에 설탕을 타서 마신다. 벌써 수십 년째 매일 아침 그렇게 하고 있다. 달달한 커피 한 잔이 목 안으로 넘어가야 비로소 몸이 잠에서 깨어나는 듯하다. 그리고 가벼운 피아노 음악을 듣는다. 커피는 육체를 깨우고 음악은 정신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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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내가 미국에 이민 가기 전까지 한국에는 큰 병에 든 인스턴트커피나 자판기 커피가 대세였다. 다방에서는 인스턴트커피 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프림(크림) 하나 설탕 둘”과 같이 섞어서 주었다. 당시 한국은 편의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원두커피를 처음 접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그때 처음 마셨던 헤이즐넛 향의 커피는 신세계와 같은 맛이었다. 그곳에서 커피는 포트에 내려서 주로 식당이나 도넛 가게 또는 주유소 등에서 커다란 종이컵이나 머그잔에 따라주었는데 옆에는 반드시 커다란 설탕통이나 설탕팩이 있었다. 어느 순간 출근길 내 차에는 달달한 커피가 든 텀블러와 도넛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때가 한국 월드컵이 막 끝난 2002년 가을이었다. 다시 찾은 고국에는 편의점이 있었고, 원두커피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피와 설탕, 그리고 “프림”이라고 칭해지던 분말 크림이 모두 하나의 봉지에 든 커피믹스라는 것을 즐겨 마셨다. 그것은 내가 처음 근무했던 사무실에도 당연히 비치되어 있었고 아침 출근 후나 점심 식사 후 그리고 저녁 야근 때 수시로 뜨거운 물에 녹아서 사람들의 일상에 흘러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원두커피에 길들여진 내 입맛에 그것은 너무 달았고, 크림 맛은 비렸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드립 커피 머신과 원두와 필터를 어렵게 구해서 손으로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마트에서 구한 쟈뎅이라는 원두는 정말 썩은 생선만큼이나 끔찍한 맛이어서 이후에는 당시 한국에 막 진출했던 스타벅스에서 원두를 사다가 갈아 마시곤 했다.  

그로부터도 수년간 사무실에서 원두커피를 내려서 마시는 사람은 거의 나 혼자였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여전히 달달한 커피 믹스를 주로 마셨다. 그런가 싶더니 채 몇 년이 되지 않아 원두 커피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우리 회사의 직원들도 점차 원두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예외 없이 블랙으로만 마셨다. 그들은 여전히 달달한 커피믹스를 즐겼지만, 원두커피는 무조건 블랙이었다. 그들에게 원두커피란 마치 녹차와 같이 설탕을 타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고 학습된 듯했다. 누군가는 그것이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도 했다. 미국의 직장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그리고 아침마다 들리던 도넛 가게 등 어디에서든 커다란 설탕통을 커피 잔 위에 흔들던 아메리칸들은 아직 한국에 상륙하지 못한 듯했다.

2018년 지금, 원두커피에 설탕을 주문하는 나의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는 신기해 보이거나 촌스러워 보일 것이다. 며칠 전에는 사무실에서 금방 내린 커피 한 잔을 직원에게 건넸는데 그 여직원이 “앗 대표님, 원두커피가 달달한 설탕 맛이네요~”라고 하는 순간 내가 무심코 설탕을 넣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런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느낀다는 그 자체였다. 원두커피를 깔깔한 원두 맛 그대로 마시던, 설탕을 넣어서 달달하게 마시던, 크림을 넣어서 부드럽게 마시던 그와 같은 “개취”(개인 취향)가 여전히 낯선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물론 나에게 다가와 왜 설탕을 넣냐고 묻는 사람은 없지만 적어도 원두커피를 마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취향이 로또보다 더 기적 같은 확률로 설탕은 넣지 않는 것으로 통일된 사회에서, 설탕을 찾는 행위가 뻘쭘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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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에는 롱패딩이 유행하면서 사무실 앞 사거리에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가 롱패딩을 입고 서 있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서 있는 김밥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나에게 한국 사회는 여전히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나이 든 사람이라면 무조건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에 채널을 고정하고 있는 모습도 신기하고 자전거 동호인들이 자전거 종류에서부터 복장까지 “깔맞춤”하고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도 신기하다. 반대로 그들 눈에는 운동모자 하나 눌러쓰고, 평소 러닝 복장으로 자전거를 타는 내가 마뜩잖아 보일 것임을 잘 안다. 아침 조깅 길에 마침 조기 축구회가 있어서 같이 공 좀 찰 수 있냐고 물어봤다가 축구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어서 안 된다고 거절당한 경험도 나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집단적인 것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반대로 외국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것이 불편하다. 먼저 고기를 숯검정처럼 바짝 태우는 것에서부터 피가 뚝뚝 흐르는 날것 사이에 어떻게 구워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고 사이드 디시는 수프로 할지 샐러드로 할지도 자기 입맛에 따라 결정해야 하고, 만약 샐러드를 선택했다면 드레싱은 뭐로 할지도 “개취”(개인 취향)에 따라 결정해야 하고, 그놈의 감자는 프렌치 프라이스처럼 튀겨 먹을지, 짓이긴 매시 포테이토로 할지, 통으로 구워서 먹을지, 통으로 구워 먹을 거면 사워크림은 올릴지 말지 등까지 결정하고 나면 이제 음료 주문을 물어본다. “그냥 삼겹살 3인분 시키면 편한데….”라는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그런 한국에서 비빔밥에 계란은 싫으니까 빼달라고 하는 말은 그거 없으면 무슨 맛으로 먹냐는 핀잔 정도는 각오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오늘은 어제랑 날씨가 많이 틀리네요”

한국말에서 다름은 틀림과 매우 자주 혼용되는 단어다. 오늘 날씨는 어제와 다를 뿐, 틀릴 수 없지만 한국인의 의식에 다르다는 말은 넓은 의미에서 틀리다는 의미 안에 포함되는 듯하다. 다름과 틀림을 정밀하게 구분하지 않는 것에서 보이듯 우리 사회는 개방되었다고는 하나 다름은 매우 쉽게 틀림으로 인식된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고 믿는다.

한국은 과거의 제조업 기반에서 앞으로 지식서비스나 문화와 같은 산업으로 이전해야 기존 산업의 부가가치를 늘리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가 동의하는 명제다. 그런데 그 지식서비스 산업은 창의성을 핵심 동력으로 성장하는 분야다. 성실이나 근면이 핵심 가치가 되는 제조업 공정과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창의성은 다양한 것들이 제약 없이 시도될 수 있는 문화가 전제되어야 꽃피울 수 있다. 창의성이라고 하면 제법 거창한 의미인 것 같지만, 그것은 아침에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을 내 취향대로 마실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환경에서 성장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원두커피는 블랙으로만 마시고 있다면, 그 안에서 설탕을 찾는 사람이 이상하게 비친다면, 우리는 과거에 없던 그 어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묻고 싶다.

“커피에 설탕 한 스푼 어떠세요?”  


렉스코드 대표 함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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