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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번역 PM을 합니다

작성자
렉스코드
작성일
2020-09-29 11:14
조회
1954

 

출근하자 마자 메일을 열었다. 밤사이 쌓인 메일 20통. 모든 메일들이 “나를 먼저 열어줘! 내가 제일 급하단 말이야!”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급해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스크롤 바를 내려보니 오후에 납품 예정이었던 번역본이 도착해 있다. 뭔가 이상하게 떨려오는 마음으로 번역본을 열어봤다.

 

세상에…! 번역 지침도 제대로 안 지켜져 있고, 군데군데 번역이 안 되어 있는 부분도 있다. 이 번역본은 지난번 프로젝트에서부터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용어의 통일성이 중요한데, 랜덤으로 몇 개만 체크해봐도 이미 느낌이 쎄- 하다.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까? 하얘진 머릿속의 모든 뇌세포들을 동원하여 생각을 쥐어 짜낸다.

 

이렇게 번역 프로세스와 지침이 복잡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상당한 부담감이 나를 압박한다. 분야에 맞는 용어 선택 등과 같은 기본적인 번역 품질 확보는 물론이고, 문서 종류에 따라 더 정확하고 자세한 작업 지침을 만들어 작업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데, 프로세스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 지침을 모두 지킨 완벽한 결과물을 한 번에 얻어내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PM은 직접 번역하는 사람도 아니고, 번역 품질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직접적인 관여를 하는 번역 감수팀이 따로 있다. 하지만 PM은 프로젝트를 시작 단계에서부터 기획하고 최전방에서 고객을 대하는 직무이기 때문에, PM이 납품하는 번역본은 곧 그 PM의 얼굴과도 같다. 따라서 번역본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때도 적나라하게 피부에 와 닿는 듯하고, 가끔은 속도 많이 쓰리고 울적해지기도 한다. 번역 PM에게 부담감이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번역 PM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PM 일을 하는 이유, 첫 번째, 여러 가지 문서를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침 뉴스를 챙겨보지 않아도 번역 PM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공공기관이나 크고 작은 기업체에서 의뢰한 보고서나 홍보 문서, 계약서 등의 문서를 보다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담당했던 프로젝트 중에 우리나라와 일본 지자체들 간의 교류 문서를 매일 번역하는 것이 있었는데, 2019년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에는 각 지자체에서 교류 행사를 취소한다는 서한문을 많이 번역했었다. 교류가 적어지니, 오가는 교류 문서 번역 건수도 반으로 줄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PM 일을 하는 이유, 두 번째, 글로벌하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일할 수 있다. 언어를 다루는 일이다 보니 전 세계 각지에서 일해주시는 다양한 번역사님들이 많다. 렉스코드 필리핀 지사와도 매일같이 연락하고, (지금 같은 코로나 19로 인한 상황이 아니라면)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크로스 트레이닝을 통해 만날 수도 있다. 이들과 매일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일하다 보면, 일하다 알게 된 사이라 할지라도 ‘small talk’ 정도는 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

 

내가 PM 일을 하는 이유, 그 마지막은 바로 “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번역 PM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번역 PM은 자신이 책임지고 만들어 낸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매출이나 성과지표가 아니라,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때, 그리고 내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꼈던 감동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느끼고 있을 때, 번역 PM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광지에 놓인 안내 책자는 우리의 멋과 아름다움을 배로 느끼게 해주며, 길가의 표지판은 누군가에게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고심과 고심 끝에 단어 하나까지 신경썼던 서신은 그 의미가 잘 전달되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유튜브에 올라간 홍보영상에 다양한 언어의 댓글이 달리면 괜히 가슴 한쪽이 벅차오른다.

 

PM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책임감을 갖고 한 프로젝트를 도맡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고, 결과물을 내는 것, 그리고 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 부담감, 압박, 복잡한 업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번역 PM을 하는 이유는 이러한 크고 작은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 PM, 나도 몰랐던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는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니, 한 번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처음에 예시로 들었던 일은 그 분야의 전문 번역사님을 빠르게 섭외해 재번역 후, 무사히 납품에 성공하였다!



번역사업부 민효은
02-521-2648 / hemin@lexco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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