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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꼰대 공화국?

작성자
렉스코드
작성일
2020-09-04 09:49
조회
1009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인종, 환경, 외교, 경제 전반에 걸쳐서 그가 쏟아내는 말을 들으면, 그의 지적 수준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딱 무식한 백인, 레드넥, 힐빌리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레드넥은 땡볕 아래서 일하느라 목덜미가 빨갛게 탄 시골 백인을 지칭하는 경멸적인 말이다. 주로 교육 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중부지대의 시골 백인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게다가 컨트리송을 흥얼대고 있다면 딱 힐빌리의 조건(?)을 충족했다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은 대다수 견고한 레드넥, 힐빌리들이다.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미국식 비만 체형에다 군용전투복을 입고, 별일 아닌 것에도 총을 들고 소위 ‘가오’잡는 것을 즐기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게다가 요즈음 떠오른 특징으론, 그들의 대다수는 마스크 쓰는 것을 극구 혐오한다. 마스크를 쓰는 행위가 마치 자신들의 마초스러움을 배반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러한 모습이 익숙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집단과 많이 닮았기 때문일까?)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멕시칸계 지지자의 제품을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대놓고 칭찬을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CNN의 앵커 크리스 쿠오모는 대통령이 이런 팬데믹 와중에도 자신의 집무 데스크 위에 통조림 콩을 홍보하고 있는 개똥 같은(Bullshit) 짓거리를 하는 게 말이 되냐며, “Are you kidding me!” (도대체 제정신이냐?)라고 방송에서 일갈했다. 이와 같은 행보에 미국 내 소수민족이나, 진보적인 지식인층은 그를 경멸한다. 특히 미국 CBS 방송국의 전설적인 토크쇼, The Late Show를 진행하는 스테픈 콜버트는 거의 매회 빠지지 않고 그를 풍자하고, 조롱하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원칙이 있다. 바로 “의견표현은 자유되, 사실이 아닌 것을 보도하여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면 엄청난 민사상 소송을 당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샌드먼이라는 청년은 자신을 인종차별주의자인 것처럼 보도했다는 언론사를 상대로 무려 2,400억 원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금액은 아마존이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할 때의 금액과 맞먹는 금액이다. 이 사례의 원칙은 간단하다. 발언은 맘대로 한다. 다만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 응당한 책임을 진다.”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려보자.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재갈을 물려놓고 있다. 말의 취지나 맥락과는 상관없이 표현방식이 누군가의 “정서에 거슬리면” 난도질을 당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책임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정치인들의 발언이야 비꼬아져서 반대자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대한민국을 제외하고도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특별할 것도 없는 현상이니 접어두자. 연예인, 운동선수, 나아가 일상생활이나 회사에서 토론과 논쟁을 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보다는 그 ‘표현’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기보다는 손가락을 보면서 왜 손가락질하냐고 따지는 식이다.

 

일례로 최근 기안84라는 웹툰 작가 겸 방송인의 웹툰에서 여성 비하적 표현이 있다는 논쟁으로 당사자의 사과를 요구하고, 실제로 사과하자, 사과한 것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또다시 따지는(이것도 상투적인 흐름이다) 사건이 있었다. 나는 TV에 관심 없고, 웹툰에도 관심 없어서 기안84라는 사람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이 있지도 않고, 그의 웹툰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다만 문제가 된 부분은 대충 봤다. (맞다, 그냥 “대충” 봤고 그 정도는 “대충” 봐도 충분히 파악 가능한 줄거리였다) 그 스토리의 맥락은 직장 초년생들이 회사에 취직하고, 그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 일어나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웹툰이라는 특성에 맞춰 그려낸 것이었다. 여성을 비하했다는 주장은 그 웹툰의 맥락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연예인이 공인인지 아닌지, 그래서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닌지는 각자의 판단 영역으로 남겨 놓기로 하자. 그리고 개인에 따라서 그들의 표현에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부분도 인정하도록 하자. 하지만 국민이든 네티즌이든 그 누구든 간에 그들을 무릎 꿇리고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권리는 없다고 믿는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옛날 말로 하자면 광대들인데, 그들은 풍자와 해학과 끼를 부리는데 재능이 있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다. 만약 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그들의 정신에 군기를 잡는다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경직될 수밖에 없다. 대중은 그들의 표현이 맘에 안 들면, 안 보거나 안 들으면 그만이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광대”들은 대중이 외면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낼 때, 원하든 원치 않든 저절로 외면받고 고사될 것이다.

 

대중 또는 네티즌이라는 집단적인 힘에 의지해서 행사하는 권력이야말로 무서운 폭력이 될 수 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대중이 항상 현명하고 옳았던 것은 아니다. 역사를 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히틀러 집권 시 독일의 “대중”은 유대인 인종청소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20여 년 전 한국의 대중은 군부독재 정권을 종식한 후에도 그의 후계자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지금도 일본의 “대중”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의 “대중”은 트럼프와 같은 인종차별주의자에 백인 우월주의 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중국의 “대중”은 COVID-19에 대해 세계적으로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댓글을 베스트로 뽑았다. 정말 대중의 판단이 현명하다면, 이런 역사는 없어야 말이 된다.

 

그 대다수의 대중은 본인의 직장에서 자유롭게 발언하고 토론할 수 있는 문화를 꿈꾼다. 자신의 표현이 행여나 상사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 없이, 직책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오직 자신이 전달하는 “정보”의 가치만으로 검증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설령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쁘거나 공격적인 표현을 뱉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해 꼬투리 잡는다거나 뒤탈에 대한 염려가 없어야만, 비로소 자유롭고 개방적인 회의와 토론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말실수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건 단순히 ‘말실수’일 뿐이니,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거나, 억지로 사과문 쓰게 하는 꼰대 짓 또는 갑질이 없는 직장을 희망한다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 중에서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한 번쯤은 대중, 국민, 또는 네티즌이라는 집단권력 뒤에서 자신이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과나, 또는 단순히 저지른 ‘말실수’가 과연 정당하고 공평한 것인지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세상의 그 어떤 누구도 다른 이의 머리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심지어 국민조차도!



렉스코드 대표 함철용
yham@lexco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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