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일등의 품격

작성자
Lexcode
작성일
2018-01-16 09:05
조회
430


평생 자신이 속한 어떤 조직,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일등이라고는 못 해본 사람이 있다. 일등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못해본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면 일생에 한두 번쯤은 일등을 해 본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학창시절 반장을 해보았거나, 반에서 일등을 해보았거나, 달리기가 가장 빨랐거나, 백일장에서 우수상을 타 보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장기자랑에서 우승을 해보는 등 곰곰이 따져보면 일등을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수없이 있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특정 과목에서 학점이 가장 높았을 수도 있고, 동아리에서 리더의 자리를 맡았을 수도 있고, 주량이 가장 많았을 수도 있고, 볼링 점수가 가장 높았거나, 노래방에서 인기가 가장 높았을 수도 있다.

학창시절 나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일등을 해본 적이 없다. 성적은 반에서 4등 정도 해본 것이 최고 성적이었고, 기타 내가 잘한다고 하는 분야에서도 최우수상 아래, 우수상까지가 내가 오른 최고의 높이였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사회에 진출해서도 뭘 하든 나는 주연 자리를 맡아본 기억이 없다. 굳이 찾자면 동네 축구시합에서 골을 가장 많이 넣어본 적은 제법 있는데, 그렇다고 어떤 팀에 속해서 가장 잘하는 선수로 인정받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축적된 기억들은 일종의 체념처럼 내 인생을 지배했다. 뭘 해도 일등의 자리는 나의 몫이 아닐 것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대표가 된 건, 스스로에게 씌워 준 감투? 이므로 그것을 일등의 자리라고 할 수는 없다. 포부는 높았지만, 그것은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것일 뿐, 현실적으로 그 위치에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언감생심 일등에 대한 욕심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고, 그냥 주어지는 일을 정직하게 하고, 그 결과 한 해 한 해 착실히 성장하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10여 년 넘게 꾸준히 성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회사가 업계에서 일등은 아니었다. 일등을 눈앞까지 추격하면서도 한 걸음의 간격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나에게 걸린 마법 같았다.

하지만 2017년을 마감하는 시점에 렉스코드는 비로소 번역 업계에서 매출기준 일등의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판단된다. 공교롭게도 법인 전환하고 10년 만에 달성한 결과다. 많은 감회가 교차했다. 겸손을 가장하고자 함이 아니라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결과는 내가 일등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일등을 경험해봤던 많은 직원들이 모여서 일등을 만들었고 그 덕분에 일등의 영광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해석되었다. 그 공로가 누구에게 있든 간에 설립한 회사가 업계 일등이 된 것, 내 삶에서 그것 하나만으로도 평생 이어온 만년 이등의 저주(?)가 실은 오늘을 위한 축복이었다고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니 또다른 봉우리가 보인다고 했던가. 일등의 감회는 잠시, 그보다는 일등 위치에 있는 기업에 시장은 어떤 기대를 할 것이며, 반대로 기업은 또한 시장에 어떤 가치를 제시해 주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깊다. 일등이 지녀야 하는 품격은 매출과 같은 외형의 과시가 아니라 본질적 가치에서 차별화되는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때 커피 프렌차이즈 업계에서 폭발적 성장을 하면서 선두를 달리던 기업이 불과 몇 년 사이에 파산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것은 나에게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다. 일전에 모 기관에서 주최하는 경영자 과정에서 우연히 그 회사의 최고 경영진 중 한 명과 한 학기 수강을 같이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에게서는 일등기업으로서의 고민이나 진지한 성찰보다는 거북스러운 거만함이 느껴져서 학기 내내 대화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회사의 커피에서는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커피 본연의 풍미가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불과 서너 번 이용한 후에는 그 커피 브랜드는 기피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회사의 운명이 오늘날처럼 되리라는 예상까지는 못했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런 결과를 접했을 때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서 스타벅스는 십수 년을 한결같이 이용하고 있다. 어떤 체인점에 들어가나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균일한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고, 수많은 커피 브랜드와의 경쟁 속에서도 독보적인 브랜드 가치를 꾸준히 이어가는 저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그것은 치밀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 회사가 그 회사의 내부 매뉴얼을 번역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자료에는 매장의 청결 상태는 물론 매장에서 나는 냄새까지 세밀하게 체크하도록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 정도는 말해도 될 것 같다.

그간 국내 번역 업계는 냉정하게 평가할 때, 선두기업들이 먼저 시작했고, 그만큼 실적이 더 쌓였고, 그로 인해 매출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뿐, 후발기업들이 따라갈 만한 가치, 혹은 그 반대 (따라잡지 못할 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기술은 없었고, 경영은 소극적이었으며, 신용과 비전은 부재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배워야 할 것보다는 같은 업계로서 낯이 부끄러울 만큼 조악한 콘텐츠가 변함없이 게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냥 “매상이 좀 더 높은 옆 가게”, 그 이상의 가치는 발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오늘의 일등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가 잘해서 얻는 일등이 아니라, 게으른 일등이 추락해서 어부지리로 얻은 일등이라고 평가된다. 일등의 자리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일등의 품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성찰해 봐야 하는 이유다.

#렉스코드 #함철용 #만년_이등 #마침내_일등 #스타벅스 #일등의_품격 #번역업계

렉스코드 함철용 대표
전체 0

전체 292
번호 썸네일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국내거주 재외동포 채용, 프로젝트 PM에 도전해보세요!
국내거주 재외동포 채용, 프로젝트 PM에 도전해보세요!
국내거주 재외동포 채용, 프로젝트 PM에 도전해보세요!
렉스코드 | 2020.09.25 | 추천 1 | 조회 151
렉스코드 2020.09.25 1 151
291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번역 PM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번역 PM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번역 PM을 합니다
렉스코드 | 2020.09.29 | 추천 1 | 조회 85
렉스코드 2020.09.29 1 85
290 빠름의 미학, Zero Friction을 꿈꾸다
빠름의 미학, Zero Friction을 꿈꾸다
빠름의 미학, Zero Friction을 꿈꾸다
렉스코드 | 2020.09.29 | 추천 1 | 조회 14
렉스코드 2020.09.29 1 14
289 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렉스코드 | 2020.09.29 | 추천 0 | 조회 13
렉스코드 2020.09.29 0 13
288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렉스코드 | 2020.09.29 | 추천 0 | 조회 12
렉스코드 2020.09.29 0 12
287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렉스코드 | 2020.09.29 | 추천 1 | 조회 10
렉스코드 2020.09.29 1 10
286 대한민국은 꼰대 공화국?
대한민국은 꼰대 공화국?
대한민국은 꼰대 공화국?
렉스코드 | 2020.09.04 | 추천 6 | 조회 1007
렉스코드 2020.09.04 6 1007
285 "관심을 받아야 하는 나, 관종인가요?"  -신입사원의 학회 영업 도전기
"관심을 받아야 하는 나, 관종인가요?"  -신입사원의 학회 영업 도전기
"관심을 받아야 하는 나, 관종인가요?" -신입사원의 학회 영업 도전기
렉스코드 | 2020.09.04 | 추천 3 | 조회 179
렉스코드 2020.09.04 3 179
284 이젠 혈액형이 아니라 MBTI의 시대!
이젠 혈액형이 아니라 MBTI의 시대!
이젠 혈액형이 아니라 MBTI의 시대!
렉스코드 | 2020.09.04 | 추천 3 | 조회 284
렉스코드 2020.09.04 3 284
283 편집팀의 난제, “이미지는 대체 어떻게 편집하지?”
편집팀의 난제, “이미지는 대체 어떻게 편집하지?”
편집팀의 난제, “이미지는 대체 어떻게 편집하지?”
렉스코드 | 2020.09.04 | 추천 6 | 조회 220
렉스코드 2020.09.04 6 220
282 그럼 너도 통역사야?
그럼 너도 통역사야?
그럼 너도 통역사야? (1)
렉스코드 | 2020.09.04 | 추천 6 | 조회 271
렉스코드 2020.09.04 6 271
281 [통역사 인터뷰] “화상 상담회, 코로나 이전과 그 이후” 이재경 영어 통역사
[통역사 인터뷰] “화상 상담회, 코로나 이전과 그 이후” 이재경 영어 통역사
[통역사 인터뷰] “화상 상담회, 코로나 이전과 그 이후” 이재경 영어 통역사
렉스코드 | 2020.07.30 | 추천 6 | 조회 1652
렉스코드 2020.07.30 6 1652
280 CAT툴, 왜 제대로 배워야 할까요?
CAT툴, 왜 제대로 배워야 할까요?
CAT툴, 왜 제대로 배워야 할까요?
렉스코드 | 2020.07.30 | 추천 4 | 조회 588
렉스코드 2020.07.30 4 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