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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나야 했을까

작성자
렉스코드
작성일
2020-04-02 17:59
조회
341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재택근무를 한지 한 달여가 되어간다. 그 한 달 사이에 봄은 부쩍 다가섰다.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고, 목련도 피었다. 남쪽을 향한 따뜻한 양지에는 성급한 벚꽃이 피었다. 지구촌 전 인류는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자연은 그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시계대로 움직인다.

 

선장은 끝까지 배를 지키라 했다. 직원들은 재택근무로 전환했지만 나는 여전히 사무실로 출근한다. 드문드문 출근한 직원들 사이의 공간만큼 휑한 정적이 감도는 사무실은 많이 스산하다. 느낌은 마치 폐업 직전의 회사 같지만, 회사의 월별, 분기별 매출은 오히려 목표치를 넘어서는 실적을 내고 있다. 우리는 가끔 영상 회의로 만나서 각자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안도한다. 영상 너머, 개인의 영역이라 감춰져 있던 동료들의 거실이나 방 한 귀퉁이 사적인 모습에 슬며시 눈길이 가는 것은 산책 나간 강아지들이 서로의 냄새를 맡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사회성을 지닌 동물들의 본능적 행위다.

 

수십 만년 간 인간은 그렇게 집단을 이루고, 집단 내에서 특정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서로의 위치와 역할을 정하고, 집단을 통해서 개인의 안전을 보호받기도 했으며, 또한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는 행위 같은 것들을 진화시켜왔다. Homo Sapience(현명한 인간)는 동시에 Homo Commercium(소통하는 인간)이자 Home Socies(사회적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 제아무리 혼밥, 혼술, 나아가 혼여(혼자 여행)도 개의치 않는 시대라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을 떠난 인간에게는 본능적 외로움과 불안함이 엄습한다. 혼자 밥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시고, 여행도 잘하는 나 같은 인간은 그와 같은 외로움과 불안함을 못 느껴서 고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을 자학적으로 즐기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굳이 마주 앉아 얼굴을 보며 일해야 했을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된 재택근무는 지난 수십 년간 단단하게 형성되었던 전통적 업무 방식에 대한 생각을 거듭하게 한다. 생각해 보니 새벽에 내 집 문 앞에 배송된 우유를 냉장고에 넣기까지, 나는 그 우유를 생산한 농부나, 그 우유를 판매한 회사의 직원이나, 더 나아가 그 우유를 내 집 문 앞까지 배달해 준 배달원과 일체 만난 적이 없다. 회사에서는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고객의 의뢰를 받아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작업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고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정작 사무실의 우리끼리는 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는 2m 반경 내에서 일해야만 했을까?

 

실상 재택근무는 올해 회사의 경영 방침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과제였다. 엄밀히는 재택근무라기보다는 원격근무체계가 더 맞는 말이다. 즉 자신의 데스크를 벗어나서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연속성 있게 해나갈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했다.

 

첫째, 업무의 전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흔히 말하는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기업통합 운영시스템)나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리 시스템) 또는 SCM(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망 관리 시스템)과 같은 솔루션이 그것이다.

 

둘째, 위 과정에서 생산, 수정되는 모든 파일이나 결과물은 개인의 PC가 아닌 클라우드 환경에 저장되고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스템과 정책이 함께 수립되어야 하는 문제다. 시스템은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클라우드 서버 환경을 의미하고, 정책은 “회사 업무 파일은 개인 PC에 저장할 수 없다”와 같은 규정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분산되어 있는 구성원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및 협업 플랫폼이다. 슬랙, 마이크로 소프트 팀즈, 줌 등과 같은 솔루션을 독자적으로 혹은 유기적으로 조합해서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율근무에 맞는 업무 평가와 보상체계다. 직원이 출퇴근하여 업무 하는 것을 전제로 만든 기존의 평가 시스템은 자율근무에 따른 성과를 적절하게 평가할 수 없다. 업무 과정이나 소양을 평가하는 부분은 축소하고 성과나 결과를 평가하는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위와 같은 단계를 밟아가던 참이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갔을 때, 우리는 신속하게 재택근무로 업무체제를 변환시킬 수 있었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서 회사에 출근 못하는 것은 아니니, (재택근무와 출근을 자율로 맡겼기 때문에) 직원들의 만족도는 당연히 높다. 그만큼 업무 효율이나 성과도 높을지는 시간이 흘러봐야 알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온다면, 이번 기회에 재택근무 형태를 보다 정기적이고 고정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출퇴근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율근무나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어 있는 실리콘밸리에서조차 최근의 트랜드는 출퇴근하는 업무 방식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토론과 협업의 중요성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전기를 보면 애플의 새로운 사옥을 설계할 때, 화장실이나 계단 회의실, 휴게실 등은 이용하기 아주 불편하게 설계했다고 했다. 되도록 직원들의 동선을 교차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을 구성할 때,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 곳곳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앉아서 아침에 커피도 마시고, 점심 도시락도 같이 먹고, 간간히 모여서 잡담이나 회의도 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그럴 때 나온다. 우리가 언제 전체 회의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개발한 적이 있던가? 누군가가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쳤듯이, 좋은 생각은 일상에서 예상치도 못하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소통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절반 정도는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 역시도 그중의 한 명이다. 소통은 모든 구성원의 책임이고 의무이니까 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아이의 양모는 절반이라도 나눠서 갖기를 원했고, 친모는 아이를 포기하더라도 아이를 살리는 쪽을 선택했다. 인간에게 소통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자신이 편한 길만 찾는다면 조직은 갈갈이 찢어질 것이고, 그 누구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지 않겠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도 그 피해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바벨탑은 그렇게 무너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나고 우리 모두 얼굴 맞대고 커피 한잔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가끔은 만나서 눈빛 마주치고 북적이는 장터처럼 사람 살아가는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길가에 살며시 벚꽃이 피니 멈춰 서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득하고,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그득하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인간은 Homo Socies인 것이 맞다.



렉스코드 대표 함철용
yham@lexco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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