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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샀다.

작성자
렉스코드
작성일
2020-02-27 18:36
조회
246

이런 달력을 마지막으로 써본 게 언제더라.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살굿빛 달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각에 잠긴다. 생각해보면 나는 손으로 쓰는 달력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하물며 고등학교 때도 다른 친구들은 자를 대고 반듯하게 밑줄을 치고, 형형색색의 형광팬을 긋던 학습플래너조차 나는 써본 적이 없다. 급하게 스케줄 정리가 필요할 땐, 옆에 보이는 노트나 하얀 종이에 찍찍 생각을 정리해놓고선, 시간이 지나면 버리거나, 잃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랬던 내가 무슨 바람이 불어 손으로 써야 하는(의무는 아니지만) 탁상 달력을 샀는지에 대해선 나조차도 조금 의문이 들었다.

 

내 자리는 창문 바로 앞이다. 그냥 창문 말고, 커다란 유리 창문 앞. 그래서 해가 가장 밝게 떠 있을 때, 해가 서서히 가라앉을 때, 가끔은 달이 마중 나왔을 때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다. “이 멋진 풍경에 어울리는 걸 하나 사고 싶었어.”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창밖 풍경과는 다른, 내 삭막한 책상 위를 조금이나마 화사하게 만들고 싶었다.

 

문제는 달력을 사고 나서부터였다. “달력을 샀다 → 책상 위에 두었다” 까지는 원활한 흐름이었는데, 그 이후가 어려웠다. 그냥 힐끗거리며 날짜만 확인하기엔, 내 달력은 너무 컸고, 또 그 빈 공간이 괜히 끈덕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결국 빈 곳에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채워 넣어야 하는 인간의 못된 습성 덕분에, 내 달력은 책상 위에 가로눕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날을 먼저 체크하고, 3월로 돌아왔다. 잘 써야지. 예쁘게 써야지. 그런데, 뭘 적지? 한 번 그으면 그 모습 그대로 스며드는 잉크는 내 손을 몇 번이고 제지했다. 내 업무 일정은 컴퓨터 안에 차곡차곡 잘 정리되어 있고, 심지어 “○월 ○일 ○시까지”라고 상세히 적혀있는 일정도 있다. 굳이 그러한 일정을 이 달력에 다시 적는 건, 시간 낭비였다.

 

하늘을 봤다. 아침에는 쌀쌀한 공기처럼 하늘마저 뿌옇게 보였는데, 언제 이렇게 날이 갰지? 높이 솟은 건물 틈새로 유유자적 흘러가는 구름과 살짝 벌어진 창문 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당장이라도 나오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맑은 하늘이 눈에 가득 담겼다. 그리고 생각났다. 무엇을 적어야 할지.

 

3월 4일~3월 6일 휴가.

요령이 없어 자를 대고 긋지 않아 삐뚤빼뚤 못생긴 직선 위로, 작게 새긴 더 못생긴 글자, “휴가”.
결국 나는 내 달력에 행복을 새기기로 했다.


영업마케팅팀 채해린
02-521-2787 / hrchae@lexco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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