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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봄날은…

작성자
렉스코드
작성일
2020-01-30 14:29
조회
165

 

푸근한 겨울이다. 한 해의 마감과 새해의 설계를 마무리하고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산책을 나선다. 따라나선 강아지는 대지가 머금은 냄새를 탐닉하느라 분주하다. 양재천가에 꽃봉오리는 솜털처럼 피어났다. 남도에서는 때 이른 동백꽃과 유채꽃이 피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제철을 모르고 철없이(?) 피는 꽃들이 애꿎은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은 정작 인간의 역사보다 오랜 진화의 시간 속에서 습득한 그 온도에 맞게 변함없이 꽃을 피운 것 뿐이다. 원칙은 변함없되 굳이 정해진 때를 고집하지 않고, 그것을 따라야 할 때를 따른 것이다.

 

올해도 음지의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남쪽의 매화는 피어날 것이다. 눈 속에서 피어난다고 해서 설중매라고 했다. 뽀얀 꽃잎은 한없이 가녀리고 수줍은 듯한데 눈을 들어보면 산천을 뒤덮은 매화 군락은 굽이굽이 출렁이는 봄의 향연이다. 진달래도, 개나리도 그즈음 어우러진다. 군락을 이루기보다는 산골짜기에 드문드문 피어나는 진달래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자태다. 그 꽃잎을 따서 씹으면 딱 “가녀린 분홍 맛”이 난다. 노란 개나리 꽃잎은 천진난만한 아기들의 웃음소리 같다. 개나리 넝쿨이 우거진 곳이라면 쑥도 근처에 있을 것이다. 보들보들한 쑥은 그 언젠가 할머니께서 거친 손안으로 내어주시던 꾸덕하게 마른 떡 한 덩이를 입안에 넣고 씹을 때, 부드럽게 녹으면서 배어 나오던 단맛의 추억과도 같다. 이때쯤 서양에서 온 튤립은 당당한 자태와 도발적인 원색으로 오케스트라의 피아노 솔로와 같은 존재감을 뽐낸다.

 

이들이 봄의 전령이라면 봄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벚꽃일 것이다. 우리 삶에서 벚꽃 흐드러지는 절기를 맞이하는 것은 축복이고, 그것을 불과 수십 번밖에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것은 그 반대편에 존재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의 어머니는 그렇게 벚꽃이 흐드러지던 봄날, 떠나셨다. 벚꽃이 피는 봄날 양지는 엄마 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해서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그냥 그대로 평화롭고 행복하다.

 

낮에도 밤에도 벅차게 쏟아져 내리는 벚꽃 잎은 그 하나하나가 마치 내 삶의 일분일초인 듯 아쉽기만 한데, 꽃잎도 나의 삶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는 것이 참 야속하다. 하지만 이들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면 꽃이 떨어진 자리엔 열매가 맺히고, 산천은 푸르른 생명으로 충만해지고, 그렇게 날은 더욱 따뜻해진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OOO입니다!”

 

몽환적인 봄날의 꿈에서 나를 뚜렷한 현실로 소환한 것은 설을 지나고 첫 출근한 인턴 직원들의 결기 어린 목소리였다. 서둘러 답례를 하고 돌아서니, 요즘 나에게 화두인 ‘밀레니얼 세대’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떠다니던 봄날을 “순삭”해 버렸다.

 

1990년대에 태어나서 비교적 윤택한 시대를 산 이들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 대신 “즐길 수 없으면 피하겠다”고 주장하는 세대다. 입사 첫해에 평균 80% 정도가 이직하고, 이직과 퇴사를 징검다리 삼아 경력을 쌓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면 연장근무 수당을 지급하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세대다.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내 옆자리 상사가 하는 조언은 “어쩔 수 없는 꼰대 짓”으로 치부해 버리면서, 자신의 삶과 엮일 가능성이 제로인 인터넷 속 익명의 누군가가 올린 글은 “역시 구글신!”이라며 그를 전지전능함으로 인정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원래부터 꼰대”인 X86 세대는 이미 중년에 접어들었고, 따라서 밀레세대와 이들이 마주할 기회는 다행히(?) 적지만, 중간에 낀 70~80년대생 X 세대는 죽을 맛이다. 센 상사를 ‘모시며’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막상 자신이 상사가 되고 나니 수평 주의 조직문화로 바뀌면서, 감히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새로운 상전들이 밀고 올라온 것이다. 그나마 쥐꼬리 같은 권위에 기대어 후배들에게 “라테는 말이야…”라고 입을 떼어보고 싶지만, “결국은 너도 꼰대”라는 비아냥만 들을 것 같아서 애꿎은 입술만 꾹 다문다. 양쪽에 끼어서 의무는 많은데, 휘두를 권한도 내세울 권위도 그들에겐 딱히 없다. 이들은 베이비부머 세대와 밀레세대를 다 경험했다고 해서 “짬짜세대”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짬뽕과 짜장면이 다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막상 함께 먹어보면 맛없는 것처럼 이도 저도 아니게 인정받지 못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물론 어느 시절인들 세대 갈등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겠는가만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삶이 별로 다를 바 없었던 예전에 비해 요즘은 급변하는 세상만큼 세대 간의 가치관과 갈등도 그만큼 예리하고 큰 것 같다. 하지만 봄날에 피는 꽃들이 언제 하나만의 색만 고집했던가. 말 그대로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 꽃들이 제각각 알맞은 시기와 위치에서 피어나기에, 우리의 봄은 그렇게 찬란한 모습으로 빛나지 않던가.

 

우리에게는 원칙과 절차와 평등을 중요시하고, 맹목적인 결과보다는 그 일이 주는 가치에 더 집중하며, 단군이래 최대의 스펙으로 무장하고 한국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세계 누구와 견주어도 별로 꿀릴 것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감 넘치는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 그 위로는 합리적인 사고체계를 갖고, 혁신적인 기술을 능동적으로 습득하고 공유하는 한편, 어느 세대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아우를 수 있는 X세대가 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가난을 딛고 한국의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견인한, 강인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있다. 우리는 다들 제각각 피는 꽃이다.

 

개성이 다른 세대가 함께 산다는 것은 갈등이기보다는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가능성”이다. 이들은 때때로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은 더 다이나믹한 에너지를 얻을 것이고, 그로 인해 더 탄탄한 결론을 도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어느 한 세대의 가치가 지배해도 되는 전유물이 아니다. 꽃이 봄날 하늘과 대지와 바람과 물의 힘을 얻어 세상 위에 자신을 피우듯, 우리 모두는 그렇게 이 세상에 피워진 존재들이다.

 

각자의 색깔을 갖되, 그것만이 유일한 색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봄날 만개하는 꽃들처럼 우리 삶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워 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야 여름과 가을에 열리는 열매도 제각각일 테니…



렉스코드 대표 함철용
yham@lexco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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