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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랗다, 새파랗다, 푸르스름하다 = blue, blue, blue?

작성자
렉스코드
작성일
2019-11-29 18:29
조회
151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의 하나가 “한국 음식이 입에 맞느냐? 너무 맵지 않으냐”는 것이다.
한국에 사는 미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힘든 것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먹는다’라는 말 자체다.
이 단어는 쓰임새가 너무 넓어 이해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설날이 되면 떡국만 먹는 게 아니라 한 살을 더 먹기도 한다. 그래서 떡국을 먹으면 이마에 주름이 생길까 봐 겁을 먹기도 했다.
주름이 진짜로 하나 더 새겨진 것을 발견했을 때는 ‘충격을 먹기도’ 했다.
심지어 사람들과 사귀면서 ‘친구 먹는다’라는 말도 들었다.
출처 : 중앙일보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040261




TV 예능 프로 <비정상 회담>에 나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해진 미국인, 타일러 라쉬(Tyler Rasch)가 몇 년 전 한 신문사에 기고했던 글 중 일부이다. ‘먹다’라는 동사 하나로, 그것도 외국인이 이렇게 완성도 높은 글을 써내다니 정말 한 방 먹은 느낌이다. 그는 워낙 언어에 관심이 많아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하니 타고난 언어 능력이 반은 먹고 들어간다 쳐도, 한국에 온 지 4~5년 만에 한국인에 맞먹는 문장을 구사한다는 사실에 감탄을 넘어 살짝 자괴감마저 든다. ‘언어’를 업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고 싶은 욕망에 10여 년간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도 모자라 학원을 기웃거리고, 인터넷 강의를 뒤지고, 전화 영어 찬스까지 써봐도 우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외국어가 저 사람들은 저리 쉽게 되나 싶어서다. ‘정작’, ‘심지어’ 이런 부사까지 아주 제대로 써먹지 않았는가.

눈치챘겠지만 타일러를 애먹인 말, ‘먹다’로 과연 얼만큼의 문장을 쓸 수 있을까 호기심이 발동해 나름 시도해보았다. ‘먹다’에 이렇게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한 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디 ‘먹다’ 뿐이겠는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는 무수한 어휘들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바꾸는 일은 의미만 통하게 바꾸는 정도의 단순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파란색’만 해도 ‘파랗다’, ‘퍼렇다’, ‘새파랗다’, ‘시퍼렇다’, ‘푸르다’, ‘푸르죽죽하다’, ‘푸르스름하다’ 등 단어마다 갖는 그 미세한 뉘앙스의 차이까지 외국인이 완전히 이해하고 사용하려면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만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언어 능력은 그 언어가 쓰이는 환경에서 부딪치며 반복해서 듣고 쓰는 만큼, 또 그 세상을 보고 느끼며 또 다른 사고방식을 습득한 만큼 차곡차곡 쌓이리라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타일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저마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파랑’의 어휘들을 ‘blue’, ‘bluish’ 정도로밖에 번역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원어민이라면, 특히 저 뉘앙스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원어민이라면 좀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영화 <기생충>이 외국어 사용권에서 큰 호응을 얻게 된 데에 영어 자막이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꽤 긍정적인 신호이다. 자막번역을 맡았던 미국인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Darcy Paquet)이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의 조합인 ‘람동(ram-dong)’으로 만들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듯, 한국 언어나 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세계에 전파해줄 수 있는 더 많은 ‘타일러’와 ‘파켓’이 생겨나길 바란다면 너무 날로 먹으려는 심보일까?



품질기술팀 심윤정 에디터
070-7994-4121 / yjshim@lexco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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