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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는 신입사원과 점심 같이 먹었어요.

작성자
렉스코드
작성일
2019-08-29 14:45
조회
1976

“대표님, 시간 되실 때 점심같이 어떠세요?”
이제 입사한지 일 년이 조금 넘은 사원 ○○씨는 평소와 같이 밝은 표정으로 나의 일정을 묻는다.

 

“어 그래 언제든 좋지”
“아, 그럼 수요일이 어떠세요? 그리고… 대표님 뉴스레터 기사도 수요일까지 부탁드릴게요!”

 

흔쾌히 답하고 돌아선 후 머지않아 그날이 그 친구의 마지막 근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케팅 부서로 들어왔던 친구인데 매우 성실하고 똑똑한 직원이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면접 보러 올라온 그녀의 손에는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웬 빵 봉지예요?”
“우리 동네에는 이 빵집이 없어서 서울 온 김에 샀습니다.”

 

그렇게 순진한 대졸 초년생이었다.

 

마케팅 부서는 내가 직접 관할하는 부서이다. 나는 회사에서 마케팅과 개발팀을 이끌고 있다. 선제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회사의 브랜드를 이끄는 역할이다. 그 불쌍한(?) 신입사원은 대표가 사수인 팀에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다양한 마케팅 영역에서 그녀는 매우 성실하게 일했다. 이렇게 매달 발행하는 회사 뉴스레터도 그녀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신입사원과 대표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메꾸기 힘든 간극이 존재했다. 특히 마케팅과 관련된 글쓰기에서 그러했다. 나는 상투적인 홍보문구는 무시하다 못해 경멸하기까지 하는 결벽증이 있다. 제목 하나를 뽑는데도 어디선가 본듯한 문구는 혹독하게 비판했다.

 

“개나 소나 썼음직한 문구는 쓰지 마세요!”
“이건 동네 통닭집 전단지 수준입니다!”
“최고, 최선 이따위 상투적인 단어를 쓰지 말고 최고, 최선을 느낄 수 있게 표현하세요!”
“마케터는 자기 내면에 끼와 그것을 어떻게든 분출하고 싶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간 내가 그 사원에게 던진 모진 언어의 화살들이다.

 

사실 그녀는 평범한 환경에서 모범적으로 성장한 직원이었기에 나의 이러한 기대를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떠한 글을 써도 그녀의 글은 매뉴얼처럼 딱딱했고 교과서처럼 정직했다. 달리 말해서 그 틀을 넘어서는 창의성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직원이나 나나 글쓰기 부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입으로 아무리 떠들고, 현란하게 기획을 세워도,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결국은 문서이고 문장이니까. 말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하다가도 “그거 누가 써 볼래요?”라고 묻는 순간, 모두 침묵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고, 내 마케팅 팀원이 그런 부류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그 직원도 스스로 노력 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마치 삼키기 싫은 알약이 아무리 노력해도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하고 입안에서만 맴돌듯이, 그녀가 교육받고 살아온 환경에서 형성된 인식은 이미 조금의 빗나감도 허용하기 힘들 만큼 단단하게 그녀를 가두고 있었다. 나는 급기야 굳이 마케팅을 하지 말고 보다 적성에 맞는 부서를 찾아서 일하기를 진심으로 권했다. 창의적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전재만 내려놓으면 나머지는 다 괜찮았으니까. 그 직원은 여전히 성실했고,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뭇 밝았다.고객 취재를 나가거나 회사 홍보행사를 준비하고,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취합해서 발행하는 등의 업무를 나무랄 데 없이 잘 처리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퇴사를 결정하게 된 것은 예측 못할 일은 아니었다. 차분하게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기보다는 적성에 맞는, 그래서 더 잘할 수 있는 직무를 해 보라고 권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그것을 수용하리라는 기대는 없었고, 사실이 그랬다.

 

 

“뭐 먹고 싶어?”

 

마지막 날 점심을 먹으러 나가며 물으니 회사 인근 이탈리안 파스타 집과 인도 카레 음식점을 꼽는다. 우리는 비교적 흔한? 파스타집보다 인도 카레 식당으로 향했다. 뒷골목 한 칸 뒤에 숨어있는 그 식당을 나는 다른 신입사원과 함께 자주 가곤 했는데, 그녀는 말만 들었고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식당 안은 정결했고 우리가 주문한 난과 카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맛있었다.

20대 직원과 50대 회사 대표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나눌만한 공통 화제는 “휴가 때 뭐 했어요?”와 같은 상투적 질문 내지는 ‘직업과 장래’와 같이 퀴퀴한 소재 이외에는 달리 없었다. 우리는 전자를 거쳐 후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입사원들이 수시로 퇴사나 이직을 하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 거기에 그 직원은 “시대가 변한 걸까요 사람이 변한 걸까요?”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돈이 변한 거다”라고 답했다.

지금 20대인 당신이나 과거 20대의 나 자신이나 힘든 건 똑같이 힘들고, 미래에 대해서 불안한 것도 똑같다. 2000년대 20대들의 고민이 1980년대 20대들의 고민보다 더 심각하거나 견디기 힘들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지금의 20대는 더욱 풍요롭지 않은가? 그런데도 왜 포기나 좌절이 많냐고? 툭 까놓고 말해서 그건 포기하고 좌절해도 먹고 살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있기 때문이지. 일하면서 모아 논 얼마간의 저축이 있다던가, 하다못해 기댈 수 있는 부모라도 있으니까 포기할 수 있는 거야. 똑같이 힘들어도 너의 어머님이 요구르트 배달을 하시고, 네가 번 돈으로 가족의 생활비를 보태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쉽게, 자주 그만두지 못해. 이것은 냉정하고 엄연한 현실이야!

그 직원은 별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개의치 않는 미소를 띠었다. 회사로 복귀하는 길의 늦여름 햇살은 한여름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드셌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도 나는 그녀가 회사에 근무하는 내내 어겼던 약속을 또 어겼다. 수요일, 자신이 퇴사하는 날까지 달라고 한 뉴스레터를 하루 지난 오늘 마감하고 있으니까…

 

그 직원의 후임이 마무리할 이 뉴스레터를 그녀도 보게 될 것이다. 누구나 헤어진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항상 이 두 마디다.

 

“그동안 고마웠어”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해”

 

아, 그리고…

“뉴스레터 또 늦었다, 다음엔 안 늦을게… ㅎㅎㅎ”



렉스코드 대표 함철용
yham@lexcode.com

전체 3

  • 2019-09-06 16:17

    아... 그렇죠... 저도 오늘 팀원이 관둔다는 이야기 나누어서 무심히 넘기던 뉴스레터를 읽었네요.... 하하... 제가 무심히 넘기는 그 어떤 것도.. 누군가가 노력으로 만든거니깐
    또 그래서 누군가가 알아주면 힘이나겠죠.. 백조가 아니라 백조발이라서 수면위에서 빛나지 못하지만 백조의 발은 중요하다 못해 필수적이니깐요... 그럼 모두들 힘찬 발걸음 되세요
    우리에겐 연휴가 있으니깐요..ㅋㅋ


  • 2019-09-11 02:36

    20살때부터 제가 번 돈으로 가족 부양했는데
    정말 아니라서 그만두는데도 "간절하지 못하니 요새 신입은 빨리 그만둔다 소리 들었습니다.
    -
    돈도 돈이지만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옵션이 낳은 결과가 아닌가 싶네요
    -
    예전엔 한 직장이라도 감사히 다녀야했겠지만
    지금은 프리랜서, 사업, 재취업, 일용직, 아르바이트
    옵션이 많으니까요
    -
    세상이 변한거죠


  • 2019-09-02 08:54

    철용이형.... 형 그래도 멋진 사장님 이시네요... 이렇게 속을 드러내는 것 누구라도 쉽지는 않을껍니다~~^^::

    렉스코드라는 한시적(?) 운명 공동체의 항해를 맡고있는... 모두의 성장을 위해서 더 고민하시고(헐빈한 머리카락이 하이모로 대체되더라도~~^^) 헌신하시며 고뇌하시고 행함으로 본을 보이시길....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김정식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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