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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알면 깜짝 놀랄?만한 촛대바위의 전설

작성자
Lexcode
작성일
2018-11-05 10:16
조회
56
“옛날 이곳 추암 해안에 한 남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소실(小室)을 얻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본처와 소실 간에 투기가 빚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두 여자의 시샘에 급기야 하늘도 노하여 벼락으로 징벌을 가해 남자만 남겨 놓았다. 오늘날 홀로 남은 촛대바위가 그 남자의 형상이라 한다.”


추암촛대바위




강원도 동해시 추암동에는 추암 해수욕장이라는 조그만 해변이 있다. 그곳은 해안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바위로 유명하다. 바위의 모습은 마치 촛대(촛대는 ‘X대’를 비유적으로 말한 것)와 같아서 추암 촛대바위라 불린다.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그 촛대바위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달하는데, 그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추암 촛대바위와 주변의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그 언덕의 기념 조형 앞에 추암 촛대바위의 전설이 새겨져 있는데 위 이야기는 그곳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요약한즉, 남자가 첩을 얻었고, 그러자 두 여자는 서로 시기했으며, 그 결과 하늘이 “질투하는 두 여자에게” 천벌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어떤가? 저 이야기가 그냥 가볍게 흘려들을 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이 장면에 성범죄의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사회적 비난을 받는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옛사람의 전설이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되 수백 년 전의 사람이 했다는 말에 대해서 지금 SNS에 올라온 글 대하듯 ‘좋아요’, ‘화나요’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전설이라는 것이 애당초 기록되어 있는 정형화된 이야기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말하는 사람에 따라 제멋대로 각색되고, 더해지고 생략되기도 하는 것 아닌가. 그렇기에 전설이란 사실관계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질 필요는 없으며 그저 재밌게 듣고 흘리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나아가 저와 같이 국민의 세금으로 공공의 비석에 새겨 모두가 읽게 만드는 행위를 하는 국가 공무원이라면 관련된 내용이 과연 공공의 보편적 가치에 비추어 타당한지 검토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에 따르는 책임도 져야 한다고 믿는다. 더욱이 그것이 외국어로 번역되는 것이라면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저런 낯부끄러운 내용을 친절하게 영어로도 번역해 놨으니 그 내용을 옮기자면 이렇다.

“A long time ago a man lived on the Chuam coast. One day he got a mistress. After that day, his first wife and the mistress were so jealous of each other that they were always in a furious conflict. Heaven got in fury because of their jealousy and finally punished them with a thunderbolt and left the man alone. It’s said that the Chotdaebawi left alone the figure of that man. 이하 중략”

번역된 내용은 앞서 한국어 전설 그대로다. 남자가 첩을 얻었는데 그들은 항상 질투했고, 하늘이 노해서 두 여자에게 벼락을 내리고, 남자는 촛대바위로 남았다는 전설이다. 이 전설을 읽는 외국인들은 아직도 이것이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라고 이해할 것이다. 가뜩이나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낮은 국가라는 선입견이 있는데(사실이 그렇기도 하고), 이와 같은 전설을 읽는 외국인들은 피식 웃음을 흘릴 것 같다. 자연이 빚어낸 경치는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거기에 새겨 넣은 인간의 이야기는 부끄럽고 낯뜨겁다. 그냥 용머리를 닮았으니 용바위라고 한다던가, 하늘로 오르는 선녀와 같다 해서 선녀폭포라고 한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빌려와 촛대와 같이 생겼다 해서 촛대바위(Candle stick rock)라 부른다고 했다면 창의적이지는 않을지언정 고개를 끄덕였을 법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광지나 유적지의 안내문을 번역할 때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여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 얽힌 유적지가 많은데 “청나라 침략 시…”와 같은 문구를 중국어로 번역하거나, “일제 강점기 시…”와 같은 표현을 일본어로 옮길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이에 대해 외국인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우리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굴욕적이라고 반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애당초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들이지 말거나, 민감한 사항은 굳이 번역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든다. 관광 수입을 위해서 그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이 불쾌할 내용이나 우리가 부끄러울 내용을 가감 없이 번역하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의 역사 교과서를 외국인 입맛에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이 많이 찾아 주기를 원하는 관광지나 유적지의 역사를 번역하는 거라면 그 문화권의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Magnificent한 설악산의 가을
Magnificent한 설악산의 가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저 추암 촛대바위의 영문 설명 판에는 다른 번역적 오류도 눈에 띄는데, 예를 들어 “They wrote many poems about this magnificent view (많은 사람이 이 장관을 묘사하는 시를 지었다)”와 같은 문장이다. Magnificent는 그랜드 캐니언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이구아수 폭포, 아마존강 등 압도적인 규모의 자연을 묘사할 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단어다. 국내에서는 성산 일출봉이나 설악산, 금강산 정도의 규모에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10-20m여 높이의 추암 촛대 바위에 Magnificent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과장된 표현으로 보인다. 또한 아름다움에 취했다는 뜻으로 쓴 “lost in ecstasy”와 같은 표현도 어설픈 과장의 연속이다. Ecstasy는 성적 흥분이나 환각, 종교적 몰입 등 매우 강렬한 희열을 묘사하는 말로 한국어의 비속어 표현 중 “뽕 갔다”와 매우 가까운 의미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몰입하고 있었던 옛사람의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선택이다.

남이 한 것을 비판하기는 쉬우나 자기가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것이 세상일이다. 이론보다는 치열한 현실 세계의 번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보니 이 정도 비판했으면 나의 패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아름답지도 않고 창의적이지도 않은 글보다는 한국이 낯선 외국인에게 이런 정도의 소개면 충분할 것 같다.

The high mountains merging with the ocean characterizes the east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crafting dynamic coast lines and cliffs in the process. This limestone called Chotdaebawi (Candlestick Rock) and its surrounding rocks have been formed by erosion, owing to the powerful movements of the sun, wind, and sea. An old, noble man has named it Neungpadae, which means ‘the footsteps of a beautiful lady’. From this point, Japan is about 400 kilometers to the east across the East Sea.
(높은 산이 바다에 빠지면서 한반도 동해안의 특징인 다채로운 해안선과 절벽을 빚어내었습니다. 이 석회암 촛대바위와 주변의 바위들은 태양과 바람과 대양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예전 어느 선비는 이곳을 아름다운 여인의 발자국 같다는 뜻에서 ‘능파대’라고도 불렀습니다. 이 지점에서 동쪽으로 동해를 가로질러 400km가량에 일본이 있습니다.)

#추암 촛대바위 #동해시 공무원은 뭐 하는 거얌


렉스코드 대표 함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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